[인물탐방] 풀뿌리 운동에 땀 흘리는 변재성 전 휴스턴한인회장

변재성 전 휴스턴한인회장

다양한 기회에 많은 전 현직 한인회장들을 만나보다 보면 그들에게서 무언가 남다른 비범한 정신과 삶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대부분이 자기 나름데로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서 그런지, 아니면 한 지역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리더로서 자질이 남달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 휴스턴 한인회를 잘 이끌고 지금은 풀뿌리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는 변재성 전 한인회장을 만났다.

7월 16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워싱턴DC에서 개최되는 ‘제6회 미주한인풀뿌리컨퍼런스’에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했다가 본사를 방문한 것이다. 이 컨퍼런스는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 및 권익 신장을 목적으로 한인유권자연대(K-A Grassroots Conference, 대표 김동석)에서 해마다 실시되고 있으며 그는 시민참여센터(KACE 대표 김동찬)에 소속되어 2014년 한인회장 때 부터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한인회는 한국 정치보다 미국 정치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런 단체들을 격려,후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에게 “휴스턴 한인회장 시절 가장 큰 업적을 꼽으면 무엇인지?” 라고 물었더니, “한인 유권자 등록 운동과 투표참여 독려에 심혈을 기울렸다”고 하면서, “제30대 김기훈 회장이 뒤를 이어 잘 해준 결과로 백악관 인턴십 프로그램에 고등학생,대학생 26명이나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제 29대 휴스턴한인회장(2014~2015년)을 역임했던 그는 휴스턴 한인사회 근황에 대해 “휴스턴시는 230만 인구(광역 6백만)로, 텍사스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약 4만여 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면서 “화학공장,나사,석유회사,엔지니어링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학력 한인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옛날 한국 다방에서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거의 다 쳐다 보듯, 휴스턴 동포사회에서는 그 사장님 만큼 박사님 호칭이 흔하다고 한다.

1945년 해방둥이인 그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자.

부산 경남고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그는 1학년을 마치자마자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퇴교를 결심한다.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2학년에 편입했던 그는 해병대를 지원하여 월남전에 참전했다. 파병되지도 않았는데도 굳이 지원한 이유로는 그 당시 한국에서는 비젼도 없었고 우물안 개구리 처럼 너무 답답했었다고 한다.

월남 현지에서 제대하여 미국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가고 싶었으나, 무장간첩 김신조 일당 침투사건으로 제대가 유보되는 바람에 타이밍이 맞지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제대 후 동명목재사에 입사한 그는 테니스장에서 우연히 만난 김애숙 씨와 결혼하여 아들(케빈)과 함께 1976년 휴스턴으로 이민왔다고 한다.

왜 아무 연고도 없던 휴스턴을 택했냐는 질문에 그는 “전공을 살리기 위해 엔지니어링의 도시 휴스턴에서 공부한 후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연유인지 취직이 되질 않아 보험업에 뛰어 들었고 지금까지 40년간 이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했다.

68세 다소 늦깍이 한인회장 출신인 그는 두개로 나누어진 현 미주총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에게는 자신이 선두에 서야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것이 발전의 장점도 될 수 있겠지만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정신은 버려야 한다”면서 “법정으로 가 보았자 결국 승자없는 재판으로 끝이날 것이니 차라리 두 총회장들이 경쟁적으로 일을 잘 해주는 것이 250만 재미동포들을 위한 길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양측에서 내 놓은 사업계획들을 보면 다소 백화점 메뉴 같다. 이런 일들을 다 이루려면 일부는 전문 기능단체에 맡기고, 미주총연에서는 지원,후원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앞으로 먹고,관광파티만 즐기는 그런 컨퍼런스는 지양하고, 전국 비영리단체(봉사회,복지센터,노인회 등)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서로 유익한 정보교환을 나누는 전국 네트워킹을 만들어, 권익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컨퍼런스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대다수의 회원들은 미주총연이 하나가 되길 원하고 있는데 어떤 생각이신지?”라는 질문에, 그는 “그들은 이미 돌아오지 못할 루비콘 강을 건넜기 때문에 다시 하나가 되기는 어렵다. 임기가 끝난 2년 후에 ’28대 총회장이 몇 사람이었다’라는 역사는 중요하지 않다. 한국정부에 신경쓰지 말고 계획된 사업들을 잘 추진하여 각자 많은 업적을 남겨주시길 바란다.”면서 자리를 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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